동진(东晋) 시대 서예가 왕희지(王羲之)가 바로 이곳에서 천하 제일의 행서로 불리는 <난정서(兰亭序)>를 집필했다. 대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풍경이 수려해 옛 문인과 선비들이 굽이굽이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문학을 즐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. 난정문 앞에는 ‘아지(鹅池)’라는 두 글자를 볼 수 있다. 평소 왕희지가 거위를 좋아했는데, ‘아’자는 남방사람들의 아름다운 성품이 깃들여져 있고 ‘지’에는 북방인 남양(南洋)의 거침없음과 호탕함이 깃들어져 있다. 이는 왕희지와 그의 아들 왕현지(王献之)가 함께 썼다고 전해지는데 이를 '부자비(父子碑)'라고 부른다.